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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라는 폭풍이 몰아치던 시절, 한 가정은 흔들리는 배 위에 서 있었다. 값비싼 도자기 하나가 얽힌 실수로 바람은 더 거세졌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는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손버릇 나쁜 옛 친구의 그림자가 다시 떠오르며 “그때부터 그랬다”는 말이 오갔다. 경제 위기의 무게가 모두를 짓눌렀고, 누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집 안에서는 서로를 향한 마음이 엉키고 풀리기를 반복했다. “내가 누군가를 이길 게 뭐가 있겠냐”는 푸념이 터져 나왔고, 형제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한쪽에는 “너는 다 잘해”라는 칭찬이 쏟아졌지만, 다른 쪽에는 “왜 나만 빼놓냐”는 원망이 쌓였다. “미안해, 머리가 아파서 그래”라는 위로가 건네졌으나, “나 좀 봐 달라”는 외침은 여전히 메아..

결혼식 전날, 카메라 셔터가 연신 터진다. “하나, 둘, 셋” 소리와 함께 “웃어 주세요”라는 요청이 이어지고, 금명은 “내일 못 가면 뭐겠냐? 오늘이 라스트야!”라며 장난스레 외친다. 친구는 “결혼은 식장 들어가 봐야 안다더라”며 웃고, “난 너 드레스 입은 거 꼭 볼 거야”라며 기대를 감추지 못한다. “너무 예뻐”라는 감탄 속에 금명은 약속을 지켰다고 말하며 들뜬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설렘이 공기를 채운다. “엄마의 세상에도 사람이 하나 새로 왔다”라는 말처럼, 금명의 인생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가족의 반응은 엇갈린다. “친정 식구들은 다 안 오신대?”라는 질문에 “내가 장인이라도 백수 사위 안 본다”는 답이 돌아오고, 오빠들은 “눈깔에 띄지 말라”며 냉소적이다. 금명은 “눈알!”이라며 맞받아치고..

쓰레기 종량제가 시작되며 세상이 뒤숭숭하다. “어떻게 막 버리냐? 돈 들여 보냈지”라는 푸념이 오가고, 집 앞에는 경고문까지 붙었다. 금명은 뜨거운 여름날, “뜨거워, 뜨거워”라며 땀을 닦고, 파혼 후의 삶을 묻는 친구에게 “산 사람은 다 살아”라며 담담히 답한다. “애들 나 파혼한 거 다 알지?”라는 말에 “그래도 연명은 하네”라는 위로가 돌아온다. 엄마의 전화는 여전하다. “너 살아 있나 체크하시나 봐”라는 농담 속에 금명은 가슴이 꽉 막힌 듯 아프다고 느낀다. “진짜 아파”라는 고백은 7년간의 사랑을 잃은 통증을 드러낸다.  엄마와의 대화는 따뜻함으로 채워진다. “집에 전화나 해, 이 호로XX아”라는 타박에도 금명은 웃는다. “엄마가 갈까? 장조림 많이 했는데”라는 말에 마음이 녹고, “나 김정근 ..

오래된 방 안에서 창틀이 삐걱대는 소리가 바람처럼 들려온다. “사실 몇 년 전에 그 방에 살았었거든요”라는 목소리가 조용히 흐르고, 뒤틀린 창틀이 환기를 도왔다는 말이 이어진다. 그곳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금명과 영범,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가족의 애증으로 물든다. “비행기 놓쳤으면 어쩔 뻔했어”라는 다급한 한숨과 “어머니가 살리셨어요”라는 고백이 오가며, 서로를 구원하려는 마음이 엿보인다. 금명은 “진짜로 나는 못 살아요”라며 한계를 토로하고, 영범의 어머니는 “우리 금명이가 나보다 착해서 지 엄마를 봐준 거지”라며 딸을 감싼다. 사랑과 책임이 얽힌 대화는 무겁게 공기를 채운다.  결혼을 둘러싼 갈등이 점점 커진다. “결혼하자고, 어? 빨리빨리 좀 하자고”라는 영범의 조급한 제안에 금명은 “우리 엄마가 ..

오래된 집 안에서 바람이 휘몰아치듯 이야기가 물 흐르듯 퍼져나간다.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라는 간절한 목소리가 허공을 채우고, “세상 제일 센 바람은 사람 가슴 한 뼘 안에서 부는 바람이었다”라는 내레이션이 마음 한구석을 건드린다. 그 바람은 무엇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거세게 느껴진다. 가족의 목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내가 왜 계장도 못 하고 초야에 묻히냐!”라는 한탄과 “너 누구 편이야?”라는 술기운 묻은 따짐이 뒤엉킨다. “엄마는 하루도 안 빼놓고 도시락 싸 냈어”라며 따뜻했던 기억을 꺼내는 대답이 날카롭게 맞선다. 집안은 애정과 갈등으로 가득 차 있고, “빗자루 갖고 와”라는 소리와 함께 긴장이 더해진다. 결국 “나가!”라는 날선 외침이 공간을 메우며 여운을 남긴다.  사랑과 갈등이 얽힌 숨소리..

낡은 통영 자개장롱이 집 안을 어지럽히며 이야기가 물 흐르듯 시작된다. 무거운 짐을 옮기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리고, 애타는 목소리가 허공을 채운다. 그 장롱은 오래된 시간과 추억을 품은 물건으로, 좁은 공간에 억지로 자리를 잡으려 한다. 투덜거림과 짜증 섞인 말들이 오가며, 웃음과 긴장이 뒤섞인 공기가 흐른다. 어떤 이는 그 물건을 다른 용도로 쓰자고 제안하며, 소란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이사는 물건을 옮기는 데 머무르지 않고,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한다. 누군가의 거친 목소리가 집안을 쩌렁쩌렁 울리고, 그에 맞서 반항적인 대꾸가 튀어나온다. 사랑이 깃들어 있지만, 그 표현은 거칠고 투박하다. 근심이 눈앞에 드리워져 있다는 내레이션이 가슴 한구석을 파고든다. 엉뚱한 이야기와 웃음이 오가며,..

가을이 깊어질수록 금명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그녀가 꿈꾸던 것과는 달리, 치열한 경쟁과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기숙사에서는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고, 어렵게 받았던 장학금도 끊겼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생이지만 현실은 팍팍했다.도둑 누명을 쓰고 경찰서에 불려갔던 날, 금명은 정말 울고 싶었다. 항아리에서 돈을 퍼 가는 걸 눈감아 줬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졌고, 억울함은 가슴을 칠 만큼 컸다. 경찰들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했고, 몸수색을 하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나 끝까지 버텼다. 단지 억울해서가 아니라, 집에 전화가 가면 아버지가 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서 도둑 누명 쓰고 산다 그러면 울 아빠는 속상해 죽어요!' 그 한마디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

제주의 거친 바람이 좌판 위를 휩쓸고 지나갔다. 생선 비린내가 골목을 따라 퍼졌고, 시장의 사람들은 한순간도 조용할 틈이 없었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며 생계를 위해 온몸을 던졌다. 그런데 그날, 평소와는 다른 기운이 감돌았다."왜 뒤집어! 왜 뒤집어!" 경자의 울부짖음이 시장 한가운데에서 울려 퍼졌다. 도청 직원들이 나와 좌판을 강제로 철거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올림픽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명목 아래, 평생 이곳에서 생계를 이어온 사람들의 삶은 일방적으로 무너지고 있었다."미관상 좋지 않다고요?" 양임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미국 사람들의 눈에 좋아 보이도록 하기 위해 당장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짓밟는 것이 옳은 일이냐는 반박이었다. 그러나 ..

새벽 바람이 차가웠다. 애순은 오랜만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장에서 좌판을 접고 돌아오는 길, 그녀는 손끝까지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더 무거웠다.아이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특히 막내 동명이는 항상 그녀의 품을 찾았다. "엄마, 안아." 동명이는 사탕을 쥔 채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애순은 그 작은 품을 안아주려다 손을 멈췄다. 그 순간, 바깥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금명이 사고 났어요!"온몸이 얼어붙었다. 애순은 망설일 틈도 없이 뛰쳐나갔다. 거친 바람 속을 뚫고 그녀는 아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본 것은 흙투성이가 된 금명이었다. 얼굴과 팔에 피가 맺혀 있었다."피 나? 피 나?" 애순의 다급한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

제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거친 파도가 바다를 뒤덮으며, 하늘에는 잿빛 구름이 가득했다. 그러나 애순은 물질을 나가야만 했다. 손에 쥘 것이 없으면 저녁 밥상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는 두툼한 고무옷을 입고 머리에 망사를 단단히 묶었다. “오늘도 무사해야 할 텐데…” 가슴 속으로 기도를 올리며 바다로 향했다. 그녀는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익숙한 움직임으로 숨을 참고 바다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나 오늘따라 바닷속은 유난히 험했다. 물살이 세차게 몰아쳤고, 시야가 흐려졌다. 해초 사이를 헤집으며 전복을 찾아 손을 뻗었지만, 물살이 그녀를 거세게 밀어냈다. '이러다가는 손도 못 쓰고 올라가겠네.' 애순은 재빨리 방향을 틀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