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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netflix

 

가을이 깊어질수록 금명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그녀가 꿈꾸던 것과는 달리, 치열한 경쟁과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기숙사에서는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고, 어렵게 받았던 장학금도 끊겼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생이지만 현실은 팍팍했다.

도둑 누명을 쓰고 경찰서에 불려갔던 날, 금명은 정말 울고 싶었다. 항아리에서 돈을 퍼 가는 걸 눈감아 줬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졌고, 억울함은 가슴을 칠 만큼 컸다. 경찰들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했고, 몸수색을 하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나 끝까지 버텼다. 단지 억울해서가 아니라, 집에 전화가 가면 아버지가 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서 도둑 누명 쓰고 산다 그러면 울 아빠는 속상해 죽어요!' 그 한마디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 억울함은 중요하지 않았다. 돈과 배경이 없는 금명에게는 반격할 방법이 없었고, 그저 조용히 참고 넘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경찰서에서 풀려난 후, 친구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금명은 부모님만 모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다 알아도, 엄마 아빠만 몰랐으면 됐다. 자식의 가슴에 옹이가 생기는 순간을 부모는 모른다. 만약 알았다면, 분명 막아줬을 것이다. 그래서 신은 부모가 모르게 하신다. 자식이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억울함을 참는 법을 배우게 하려고.

 

한편, 아버지는 그녀를 보러 서울에 올라왔다. 명목상 박물관 개관 기념 행사였지만, 실상은 금명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딸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아버지는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군바리 같은 건 안 만나지? 군바리는 안 돼.' '데모하는 데 가지 마라.' 금명은 그런 아버지가 답답했다. 이럴 거면 왜 올라왔냐고, 왜 자꾸 간섭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터져 나온 한 마디. "아빠 짜증 나."

 

어릴 때는 아버지가 전부였는데, 이제는 그 사랑이 부담스러웠다. "아빠는 언제 생전 관광 따라다녔어? 설이고, 추석이고 배 못 띄워서 안달이던 사람이." 딸을 핑계 삼아 서울에 올라왔다는 걸 알기에, 금명은 더 화가 났다. 그러나 애순은 말했다. "20년을 짝사랑하는데." 금명은 울고 말았다. 20년 동안 자신을 위해 애쓴 부모의 사랑을 뿌리치는 자신이 미웠다.

 

 

유학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금명은 유학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문제였다. 교수님은 돈이 없으면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금명은 차마 빌릴 수 없었다. 부모에게는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애순은 딸의 눈빛만 보고도 알아챘다. "니가 거지야? 부모 없어? 왜 남한테 돈 해 준다는 소리를 듣고 다녀?" 그 말에 금명은 울컥했다. "나 유학 안 가는 거 땜에 우리 형편 빤한 거 과 애들 다 알아!" 엄마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좌판을 접는다면, 그건 금명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부모님은 집을 팔았다. 딸이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해주려고. 마지막 감을 따면서 애순은 말했다. "이건 당신 다 먹어. 아무도 퍼 주지 말고." 평생 나눠주기만 했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제야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금명은 결혼식장에 서 있었다. 여전히 울고 있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엄마처럼 사랑했다. 엄마처럼 자식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엄마처럼 애타게 품을 내어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 이야기도 동화가 될 수 있을까?'

금명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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