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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netflix

 

새벽 바람이 차가웠다. 애순은 오랜만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장에서 좌판을 접고 돌아오는 길, 그녀는 손끝까지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더 무거웠다.

아이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특히 막내 동명이는 항상 그녀의 품을 찾았다. "엄마, 안아." 동명이는 사탕을 쥔 채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애순은 그 작은 품을 안아주려다 손을 멈췄다. 그 순간, 바깥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금명이 사고 났어요!"

온몸이 얼어붙었다. 애순은 망설일 틈도 없이 뛰쳐나갔다. 거친 바람 속을 뚫고 그녀는 아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본 것은 흙투성이가 된 금명이었다. 얼굴과 팔에 피가 맺혀 있었다.

"피 나? 피 나?"

 

애순의 다급한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 "자전거 타다 그만…" 누군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만, 그녀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금명을 일으켜 세우고, 아이의 손을 꼭 쥐었다.

"니가 용왕 딸이야? 태풍 오는데 자전거를 타?"

애순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아이를 감싸 안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애순의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보다 더 그녀를 짓누르는 것이 있었다. 동명이가 보이지 않았다.

"동명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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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금명은 입술을 깨물며 어딘가를 바라봤다. 애순은 점점 숨이 가빠졌다. "동명이는 느 데리고 있던 거 아니냐?" 그녀는 필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동명아!" 그러나 어디에서도 아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바다는 거칠었다. 태풍의 잔해가 남긴 흔적이 곳곳에 드러났다. 애순과 마을 사람들은 손에 횃불을 들고 동명을 찾으러 나섰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양동명!" 여러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애순의 절망은 커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조그마한 몸이 파도 속에서 발견되었을 때, 모든 것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새끼…"

 

애순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눈물을 삼켰다. 관식은 말없이 아이를 끌어안았다. 한참 후에야 애순은 겨우 떨리는 손을 뻗어 동명의 차가운 뺨을 어루만졌다. "안아 줄걸…" 애순은 흐느꼈다. "안아 줄걸…"

장례 내내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다만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속은 텅 비어 있었다. 금명이 그녀 앞에서 울며 말했다. "엄마, 내가 자전거 안 탔으면 동명이 안 죽었을까? 내가 태풍 온다고 타지 말랬는데도…" 애순은 그제야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장례가 끝난 후, 모두가 다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애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오래 슬퍼할 여유는 없었다. 바다는 여전히 사람들을 불러냈고, 생계를 위해 다시 그곳으로 나가야 했다. "살민 살아져…" 마을 어르신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애순도 그 말을 곱씹으며 바다로 향했다.

며칠 후, 애순은 쌀독을 열었다. 몇 날 며칠을 비워두었던 그곳에 다시 쌀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아무 말 없이 남겨두고 간 것이었다. "사람 혼자 못 산다이." 그 말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애순은 다시 살아가기로 했다. 동명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지만, 그녀에게는 남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남겨진 삶을 살아내야 했다.

그녀는 결국 바다로 돌아갔다. 태풍에 쓰러진 풀도 다시 일어선다는 말을 믿으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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